
[이미지 출처=AI 생성]
[한국프라임저널 임수진 칼럼니스트] 어릴 때 부모님은 늘 내 앞에 있는 사람이었다.
손을 잡아 길을 건너게 해주었고, 넘어지면 일으켜 세워주었으며,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머뭇거릴 때면 먼저 방향을 알려주었다.
그래서였을까. 어린 내 눈에 부모님은 좀처럼 지치지 않는 사람처럼 보였다. 힘든 일이 있어도 내 앞에서는 괜찮은 얼굴을 했고, 내가 걱정할 일은 부모님이 먼저 걱정해 주었다. 그 모습이 오래갈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부모님의 얼굴보다 뒷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나보다 훨씬 크게 느껴졌던 키가 조금 작아져 있었고, 반듯했던 어깨도 예전 같지 않았다. 걸음은 느려졌고 계단을 오르다 잠시 멈춰 숨을 고르는 순간도 생겼다.
늘 몇 걸음 앞서 걷던 사람이 어느새 내 뒤에서 천천히 따라오고 있었다. 그날 이상하게 마음 한쪽이 저릿했다.
부모님이 갑자기 늙은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그동안 내 삶을 따라가느라 그 시간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해야 할 일, 만나야 할 사람, 걱정해야 할 일들이 늘 앞에 있었다. 부모님은 언제든 그 자리에 계실 것처럼 여기면서 나는 자꾸 다음을 향해 걸었다. 돌이켜보면 부모님도 처음부터 부모였던 사람은 아니었다. 누군가의 아들이고 딸이었고, 하고 싶은 일도 있었을 것이다. 두렵고 막막한 날도 있었을 테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서러운 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자식 앞에서는 쉽게 내색하지 않았다.
나는 그 마음을 너무 늦게 헤아렸다. 젊은 시절에는 사랑이 크고 선명해야 사랑인 줄 알았다. 좋은 말을 많이 해주며 무언가를 크게 해주는 것에 마음이 움직였다. 나이가 들면서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사랑은 때로 아주 조용한 모습으로 남는다.
늦게 들어오는 자식을 기다리며 켜놓은 현관 불빛, 밥은 먹었느냐고 묻는 짧은 전화, 자식에게 부담을 줄까 봐 아픈 곳도 괜찮다며 웃어버리던 얼굴.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던 것들이 이제 와 마음에 오래 머문다.
부모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시간의 방향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내 손을 잡고 천천히 걸음을 맞춰주던 부모님께 이제는 내가 속도를 맞춰야 할 시간이 왔다. 얼마 전까지 나는 부모님보다 늘 앞서 걸었다. 빨리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기다리는 것보다 앞서가는 일이 익숙했다.
이제는 조금 천천히 걸으려 한다. 혹시 뒤에서 따라오시지는 않는지 한 번 더 돌아보고, 먼저 손을 내밀고, 마음속에 오래 넣어두었던 고맙다는 말도 미루지 않으려 한다.
어쩌면 부모님의 뒷모습에서 발견한 사랑은 이런 것인지 모른다. 평생 나를 바라보며 걸어온 사람을 이제 내가 천천히 돌아보는 일.
나는 오늘부터 그 사랑의 속도에 조금 더 맞춰 걸어보려 한다.
칼럼니스트 프로필
임수진 칼럼니스트는 한국강사교육진흥원 미디어 운영국장이자, 국제평생교육개발원 교수이며 기자와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보이지 않는 마음의 소통 신호를 포착하는 ‘공감주파수’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마음기억큐레이터’라는 닉네임처럼 타인의 내면을 세밀하게 살피고 조율하며, 트니시니어의 핵심 강사로서 시니어 프로그램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어가고 있다. 주요 강의 분야는 시니어 인지·신체 활성화 프로그램과 특수학급 대상의 성폭력·성매매·가정폭력 예방 교육 등이다. 상처받기 쉬운 이들의 마음에 완벽한 공감주파수를 맞춤으로써, 누구나 세상의 기준을 벗어나 ‘가장 나다운 본질’을 회복하도록 돕는 진정성 있는 치유 가이드로 활약 중이다. 저서로는 『강사DNA』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