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프라임저널 김순복 기자] 한국강사교육진흥원이 주최한 '미꿈시(미래를 꿈꾸는 시간)' 연말 결승 왕중왕전에서 영예로운 대상 수상자로 선정된 이온숙 수석연구원. 30년간 K 맏며느리로 정체성을 잃고 살다가, 유방암 투병을 거쳐 50대에 대학원에 진학한 그녀의 이야기는 많은 이들에게 깊은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시작이 늦다는 이유로 꿈을 포기하려던 이들에게 이온숙은 살아있는 증거다. 10년간 미술심리상담사 자격증 과정을 운영하며 수백 명의 경력단절 여성들을 지도자로 양성해온 그녀는, 단순히 강의 기술을 전수하는 것이 아니라 상처받은 영혼들의 색을 되찾아주는 일을 해왔다. 현재 박사과정 중인 그녀는 "진정성"과 "회복탄력성"이라는 메시지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본지는 이온숙 수석연구원과의 심층 인터뷰를 통해 그녀의 삶의 여정, 강사로서의 철학, 그리고 중장년이 가진 숨겨진 강점들을 소개한다. 그녀의 이야기 속에는 나이에 대한 두려움을 용기로 바꾼 한 여성의 회복탄력성이 담겨 있다.
Q.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자기소개와 함께 수상 소감 들려주세요.
안녕하세요. 2025년 왕중왕전 우승자 이온숙 미술치료 전문가입니다.
현재 경력단절 여성을 대상으로 미술심리상담사 자격증 과정을 운영하며 지도자 양성에 힘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상담학과 미술치료 전공 박사과정에서 공부하고 있는 평생학습자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타이틀 이전에, 저는 이렇게 소개하고 싶습니다.
저는 30년간 K 맏며느리로 정체성을 잃고 살았던 평범한 여성이었습니다.
저는 40대에 유방암과 싸웠던 암 환자였습니다.
저는 50대 에야 대학원에 진학한 늦깎이 학생이었습니다.
이번 왕중왕전 수상은 제 개인의 영광이 아닙니다. 환경의 한계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린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에 용기를 가지고 증거로서의 저를 드러내 보았습니다. 30년 동안 투명 인간처럼 살았던 며느리가, 암으로 절망했던 환자가, 나이 듦을 두려워했던 여성이 이 자리에 섰다는 것 그 자체가 회복탄력성의 증거입니다.
늦은 나이는 없습니다. 당신도 할 수 있습니다.
이 상을 저와 같은 길을 걷는 모든 분께 함께 하고 싶습니다.

Q. 수상 전과 후, 달라진 심경이 있다면?
수상 전에는 솔직히 두려웠습니다.
‘내가 이 자리에 설 자격이 있을까?’ ‘60대 중반의 나이에….’ ‘화려한 경력도 없는 내가….’
부끄러운 마음이 먼저 들었지만, 무대에 오르는 순간, 제 30년의 며느리 생활과 암 투병, 그리고 10년간의 강사 여정이 결코 부끄러운 게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제 이야기를 진솔하게 전했을 때 청중의 눈빛이 달라지는 걸 느꼈고,
그게 진짜 힘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이제 이 상은 더 이상 제 것만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제 수강생들, 경력단절로 힘들어하는 여성들, 나이 때문에, 환경 때문에 꿈을 포기하려는 분들께 ‘증거’를 남겨줘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바뀌었습니다.
영광보다 무게가 더 무겁지만, 그 무게가 제게는 앞으로 나아갈 힘입니다.

Q. 이번 수상의 가장 큰 성공 요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세 가지 요인이 있습니다.
첫째, 진정성입니다. 화려한 이력서가 아니라 제 삶의 상처와 회복을 있는 그대로 보여드렸습니다.
K 맏며느리 30년, 유방암 투병, 탈모의 고통, 50대에 대학원 도전, 60대 박사과정의 두려움까지 부끄럽지 않게 털어놓았습니다. 그 진솔함이 심사위원과 듣는 분들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회복탄력성입니다. 성공이 아닌 ‘회복’을 이야기했습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는 힘, 스티브 마라볼리의 말처럼 ‘인생은 더 쉬워지지 않지만 우리는 더 탄력적으로 된다’라는 메시지가 공감을 얻었습니다.
셋째, 보편성입니다. 제 이야기는 저만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이와 환경의 한계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린 모든 이들의 이야기였고, 그것이 힘이 되었습니다.
Q. 전문성을 쌓기 위해 어떤 투자를 하셨나요?
전문성은 세 가지 투자로 쌓았습니다.
첫째, 교육 투자입니다. 50대에 대학원에 진학해 미술치료 석사를 취득했고, 석사 논문으로 최우수상을 받았습니다. 60대 중반인 지금도 CCC 대학원 상담학과 미술치료 전공 박사과정에서 논문을 쓰고 있습니다. 또한 가천대 명강사 최고위 과정을 이수하고, 김순복 교수님의 강의에 동행하며 현장을 체험하는 등 배움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둘째, 시간과 연구 투자입니다. 새벽 2시, 3시까지 전문 서적을 읽고 형광펜을 들었습니다. 수업 교재를 직접 개발하기 위해 밤을 지새웠고, 수강생들의 변화 사례를 기록하며 교육 프로그램을 지속해서 개선했습니다.
셋째, 현장 경험과 자기 치유, 그리고 용기입니다. 10년간 미술심리상담사 자격 과정을 운영하며 수백 명의 수강생을 만났고,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배웠습니다. 저 자신도 미술치료로 암 투병의 상처를 치유했기에, 그 진정성이 전문성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Q. 강의 시작과 끝낼 때의 기분 차이가 있었나요?
시작할 때와 끝날 때의 떨림은 완전히 다릅니다.
강의 시작 전에는 늘 떨립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수강생들에게 진짜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내 경험이 누군가의 위로가 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떨림은 제가 이 일을 진심으로 대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완벽하지 않기에 더 겸손해지고, 더 준비하게 됩니다.
강의를 끝낼 때의 떨림은 감동입니다. 수강생들이 파스텔로, 색연필로, 크레파스로 자기 내면을 표현하는 순간, 70대 할머니가 소녀처럼 웃던 순간, 우울했던 청년이 검은색 팔레트에 노란색을 더하던 순간 그 변화를 목격할 때의 전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시작의 떨림은 책임감이고, 끝의 떨림은 보람입니다. 이 두 떨림이 저를 10년간 강의실로 이끌었습니다.
Q. 미꿈시 연말 결승 주제와 핵심 내용을 소개해 주세요.
제 발표 주제는 “내 삶에 색을 입힌 10년의 기적” 소주제가 “K 맏며느리에서 나로 살아가는 여정”이었습니다.
핵심 내용은 세 가지 메시지로 구성했습니다.
첫째, 정체성 회복입니다. 1990년대 결혼 후 30년간 K 맏며느리로 살며 ‘나’를 잃어버렸던 이야기, 마트 거울 앞에서 “이 사람은 누구지?”라고 물었던 순간, 그리고 50대에 대학원에 진학하며 ‘나’를 찾기 시작한 여정을 담았습니다. 정체성 상실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였습니다.
둘째, 회복탄력성입니다. 40대 유방암 진단이라는 절망 속에서도 ‘나를 살아보고 싶다’하고 결심했던 순간, 스티브 마라볼리의 “인생은 더 쉬워지지 않지만 우리는 더 탄력적이 된다”라는 문장이 제 심장을 쳤습니다. 회복탄력성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 배우고 키울 수 있는 힘이라는 것, 경력단절 여성들에게도 현실적인 희망이 될 수 있다는 증거를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셋째, 색의 재발견입니다. 모든 사람은 고유한 색을 지니고 있지만 삶의 무게에 눌려 잃어버립니다. 제 강의는 그 잃어버린 색을 찾아 다시 자신의 캔버스에 칠하는 과정입니다. 60대에도 박사과정에 도전하며 여전히 제 색을 더해가고 있다는 이야기로 마무리했습니다.
“늦은 나이는 없고, 당신도 할 수 있다” 이것이 제 발표의 핵심이었습니다.
Q. 강사라는 직업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30년간 며느리, 아내, 엄마로만 불렸습니다. 제 이름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40대에 유방암 수술을 받고 병실에 누워 깨달았습니다. “나는 ‘나’로 살아본 적이 없구나.” 그때부터 간절했습니다. 나의 이름으로, 전문성을 가지고,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이 생겼습니다.
미술치료를 만난 건 기적 같았습니다. 색연필 한 자루로 제 내면을 처음 마주했고, 탈모로 머리카락이 흘러내리는 상태에서도 파스텔로 그림을 그리며 “나는 살아있다”라는 걸 느꼈습니다. 그 치유의 경험이 너무 강렬해서 생각했습니다. “이 힘을 혼자 가지고 있으면 안 되겠다.” 그때부터 저는 공부를 해야겠다는 꿈을 꾸며 기회를 엿보았지요.
지금 저는 미술치료라는 전문성을 가지고, 사람들이 자기 내면에 귀 기울여 자신을 스스로 발견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첫 수강생이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40년 만에 처음으로 제 감정을 표현했어요.” 그 순간, 이것이 제 이름으로 하는 진짜 일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강사는 직업이 아니라 제 두 번째 인생입니다.

Q. 강사로 활동하면서 가장 도움이 되는 교육과정이 있었다면? 그 이유는?
-‘가천대 명강사 최고위 과정’이 제 강사 인생의 분기점이었습니다.
이미 10년 가까이 강의를 해왔지만, 솔직히 불안했습니다. ‘내 방식이 맞는 걸까?’ ‘더 나은 방법은 없을까?’ 때로는 자신감과 회의 사이를 오가기도 했습니다.
명강사 과정은 그동안의 강사 활동을 다시금 돌아보게 하고 쇄신하게 만든 시간이었습니다. 제 강의를 객관적으로 성찰하며 강점은 키우고 부족한 부분은 보완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전문 강사로서의 정체성을 명확히 세울 기회였습니다. 또한 김순복 교수님의 지도로 현장을 경험하며 이론과 실제의 틈새를 메우고, 진심 어린 강의의 힘을 체득했습니다.
이 과정이 없었다면 왕중왕 무대에 서지 못했을 것입니다.
Q. 처음 강사를 시작했을 때와 지금, 가장 달라진 점은?
- 처음에는 ‘완벽함’을 추구했고, 지금은 ‘진정성’을 추구합니다.
10년 전 첫 강의 때는 떨렸습니다. 실수하지 않으려, 부족해 보이지 않으려 완벽한 강의안을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수강생들과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습니다. 제가 높은 곳에서 가르치려 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다릅니다. 제 상처와 약점을 먼저 드러냅니다. K 맏며느리로 살았던 30년, 유방암 투병, 60대에도 두려움이 있다는 것까지 솔직하게 이야기합니다. 그때 수강생들도 마음을 엽니다.
또 하나 달라진 점은 ‘가르친다’라는 생각에서 ‘함께 배운다’라는 태도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처음의 저는 ‘선생님’이고 싶었다면, 지금의 저는 ‘동행자’이고 싶습니다. 그 변화가 제 강의를 진짜로 만들었고, 왕중왕 무대까지 이끌었습니다.
Q. 중장년 강사만의 강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 중장년 강사의 강점은 삶의 무게감과 공감의 깊이입니다.
첫째, 경험의 폭입니다. 30년 K 맏며느리, 암 투병, 경력단절, 재기의 과정을 직접 겪었기에 수강생들의 아픔을 이해합니다. 이론이 아니라 삶으로 증명하기에 설득력이 있습니다.
둘째, 공감의 스펙트럼입니다. 20대 청년부터 70대 어르신까지, 다양한 세대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며느리로, 엄마로, 환자로, 학생으로 살아온 시간들이 모두 공감의 자산이 되었습니다.
셋째, 조급하지 않은 여유입니다. 젊은 강사들은 빨리 결과를 내려 하지만, 저는 기다릴 줄 압니다. 회복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천천히 가도 괜찮다는 것을 삶으로 알기 때문입니다.
넷째, 진정성입니다. 더 이상 무언가를 증명하려 하지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제 모습으로 서 있을 수 있고, 그 솔직함이 수강생들에게 안전함을 줍니다.
중장년은 약점이 아니라 회복탄력성의 살아있는 증거입니다.
Q. 교육생들이 가장 흥미로워하는 경험담이 있나요?
- “며느리는 은퇴했습니다, 나로 출근합니다” 이야기에 가장 큰 반응을 보입니다.
30년간 K 맏며느리로 살며 새벽 6시 시댁 아침상 준비로 하루를 시작했던 이야기, 거울을 봐도 ‘나’는 보이지 않고 ‘누군가의 며느리’만 보였던 순간들을 들려주면 많은 분이 눈물을 흘립니다. 특히 경력단절 여성들은 “제 이야기 같아요”라며 깊이 공감합니다.
그리고 마트 거울 앞에서의 각성 장면 “이 사람은 누구지?”라고 물었던 그 순간의 충격과 그날 집에 돌아와 대학원 원서를 찾아본 이야기를 하면 강의실이 숨죽입니다.
또한 유방암 투병 중 탈모로 머리카락이 흘러내리는 상태에서도 스카프를 두르고 색연필을 잡았던 이야기는 많은 이들에게 회복탄력성의 실제 증거가 됩니다.
수강생들은 말합니다. “선생님 이야기는 드라마보다 드라마 같아요. 그런데 그게 진짜라서 더 큰 힘이 돼요.”
제 상처가 누군가의 희망이 되는 순간, 강사로서 가장 보람을 느낍니다.

Q. 강사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인가요?
진정성과 존중, 이 두 가지입니다.
첫째, 진정성입니다. 화려한 말과 완벽한 강의안보다 중요한 것은 ‘진짜 나’로 서는 것입니다. 제 상처를 숨기지 않고, 두려움을 인정하고, 여전히 배우고 있다는 것을 솔직하게 드러낼 때 수강생들도 마음을 엽니다. 가식은 금방 들통나지만, 진심은 반드시 전해집니다.
둘째, 존중입니다. 모든 사람은 고유한 빛깔과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습니다. 70대 할머니든, 20대 청년이든, 그들의 경험과 감정을 존중합니다. 제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배우는 것이라는 태도를 잃지 않으려 합니다.
이 두 가치가 제 수업의 세 가지 원칙으로 이어집니다. 내면에 귀 기울이기, 솔직하게 표현하기,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기 이 모든 것의 뿌리는 진정성과 존중입니다.
강사는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라 삶의 동행자라고 생각합니다. 그 동행의 바탕은 진심과 존중입니다.
Q. 강사로서 가장 보람찼던 순간은?
- 수강생들의 변화 순간을 목격할 때입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70대 할머니의 이야기입니다. 평생 ‘착한 사람’으로만 사셨대요. 늘 남의 눈치를 보고, 자신의 감정은 꾹꾹 눌러 담으며 사셨습니다. 처음 몇 주간은 베이지색, 연한 파스텔만 쓰시더니, 수업 마지막 날 빨간색과 보라색으로 폭발하는 그림을 그리셨습니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며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 나도 화낼 수 있는 사람이었네요. 나도 내 감정이 있었어요.” 그게 그분의 진짜 첫 자기표현이었습니다.
또 한 분은 25년 경력단절 주부였는데, 미술심리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지금은 지역아동센터에서 아동들의 방과 후활동하고 계시며 제게 편지를 보내셨습니다. “선생님, 저도 이제 누군가의 선생님이 되었어요.”
이런 순간들이 쌓여 저를 10년간 강의실로 향하게 했고, 60대에도 박사과정에 도전하게 했습니다.
누군가의 색을 되찾아주는 일, 그보다 큰 보람은 없습니다.
Q. 강사로서의 한계를 느낀 적이 있나요? 느꼈다면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 한계는 수없이 느꼈습니다. 그중 가장 큰 한계는 나이에서 오는 체력과 기억력이었습니다.
50이 넘어 대학원에 진학했을 때, 3, 40대 동기들과 함께 공부하며 체력적인 한계를 절감했습니다. 밤늦게까지 논문을 읽으면 다음 날 몸이 말을 듣지 않았고, 암기력도 따라와 주지 않았습니다. 한 번 읽어서는 머릿속에 남지 않아 세 번, 네 번 반복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이해력은 빨랐습니다. 삶의 경험이 쌓인 덕분인지, 이론을 현장과 연결하고 실제 사례에 적용하는 능력은 오히려 젊은 동료들보다 빠를 때가 많았습니다.
부족함을 메우기 위해 반복의 습관을 들였습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공부했고, 메모를 꼼꼼히 했으며, 같은 내용을 여러 번 읽고 쓰며 몸에 새겼습니다.
분명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힘듦보다 내가 하나하나 이뤄내고 있다는 성취와 보람의 기쁨이 훨씬 더 컸기에 즐겁게 해낼 수 있었습니다. 논문 한 편을 완성할 때, 수강생이 변화하는 순간을 목격할 때, 그 기쁨이 모든 어려움을 잊게 했습니다.
한계를 인정하고, 다른 방식으로 채우며, 기쁨으로 이겨내는 것 그것이 제 극복의 방법이었습니다.
Q. 강사를 꿈꾸는 중장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 “늦은 게 아닙니다. 지금이 바로 시작입니다.”
저는 50대에 대학원에 진학했고, 60대 중반에 박사과정에 도전했으며, 10년간 강사로 활동하며 왕중왕전까지 올랐습니다. 만약 그때 ‘너무 늦었다’라고 포기했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것입니다.
중장년의 강사 도전을 망설이는 이유는 대부분 ‘나이’와 ‘경력 부족’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여러분의 가장 큰 자산입니다.
여러분이 살아온 시간, 겪어온 아픔, 극복해온 위기들 그 모든 것이 살아있는 교육 콘텐츠입니다. 책에서 배운 이론이 아니라 삶으로 증명한 이야기는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진정성입니다.
시작이 두렵다면 작은 것부터 하세요. 저도 처음엔 작은 센터에서 5명 앞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시작했습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진심이면 됩니다.
그리고 계속 배우세요. 나이가 많다고 배움을 멈추면 그때 진짜 늙는 겁니다. 저는 지금도 배우고 있고, 그 배움이 저를 살아있게 합니다.
여러분도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증거입니다.
Q. 긴장감을 극복하는 본인만의 방법이 있다면?
- 10년이 지난 지금도 강의 전에는 여전히 긴장합니다. 하지만 긴장을 없애려 하지 않고, 함께 가는 법을 배웠습니다.
첫째, 철저한 준비입니다. 긴장의 근원은 대부분 ‘불안’에서 옵니다. 강의안을 반복해서 점검하고, 핵심 메시지를 세 번 이상 암송하며, 예상 질문과 답변을 미리 준비합니다. 준비된 만큼 마음이 안정됩니다.
둘째, 호흡과 자기 암시입니다. 강의 30분 전, 조용한 곳에서 깊게 호흡하며 스스로 말합니다. “나는 할 수 있다. 내 이야기는 가치 있다. 오늘 한 사람에게라도 힘이 되면 성공이다.” 이 작은 의식이 저를 안정시킵니다.
셋째, 첫 문장에 진심을 담습니다. 완벽하게 시작하려 하지 않고, 떨리는 목소리 그대로 솔직하게 시작합니다. “오늘 여러분을 만나 떨립니다”라고 고백하면, 오히려 청중과의 거리가 좁혀집니다.
넷째, 수강생들의 눈을 봅니다. 긴장할 때는 나에게 집중하지만, 수강생들의 눈을 마주치는 순간‘아, 이분들도 나처럼 두렵고 떨리는 사람이구나’를 느끼며 동행자가 됩니다.
긴장은 제가 이 일을 진심으로 대한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긴장을 환영합니다.
Q. 1년 후, 강사로서 어떤 모습이 되고 싶나요?
- 1년 후, 저는 더 많은 이들과 만나고 더 깊이 연결되는 강사가 되고 싶습니다.
첫째, 온라인 과정을 개설하고 싶습니다. 지금까지는 오프라인 강의 중심이었지만, 더 많은 분이 장소와 시간의 제약 없이 미술치료를 경험할 수 있도록 온라인 플랫폼을 구축하려 합니다. 특히 육아와 간병으로 외출이 어려운 경력단절 여성들, 지방에 계신 분들을 위해서입니다.
둘째, 수료생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싶습니다. 제 수강생들이 자격증 취득 후에도 서로 지지하고 성장할 수 있는 커뮤니티를 만들고, 함께 지역아동센터나 복지관에서 봉사 활동도 펼치고 싶습니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 성장하는 생태계를 만들고 싶습니다.
셋째, 미술치료 관련 서적을 출간하고 싶습니다. 10년간의 현장 경험과 수강생들의 변화 사례를 담은 미술치료 기법서, 혹은 경력단절 여성들을 위한 회복탄력성 실천서를 집필하여 더 많은 분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 싶습니다. 제 이야기와 노하우를 더 널리 나누는 것이 목표입니다.
1년 후의 저는 더 많이 나누고, 더 깊이 연결되며, 여전히 배우는 강사이고 싶습니다.
Q. 이루고 싶은 도전이 있다면?
- 세 가지 새로운 도전을 꿈꿉니다.
첫째, 미술치료 관련 서적 출간입니다. 10년간 현장에서 만난 수백 명의 수강생과 함께한 이야기, 경력단절 여성들의 회복과 성장 사례, 그리고 실제 적용할 수 있는 미술치료 기법을 담은 책을 쓰고 싶습니다. 제목은 '60대, 나는 지금 가장 나답습니다' 또는 '내 삶에 색을 입히는 시간'으로 구상 중입니다. 전문 서적과 대중서 두 권 모두 도전하고 싶습니다.
둘째, 백드롭 페인팅 개인전 개최입니다. 강사이자 치료사로만 살아온 것이 아니라, 저 자신도 한 명의 예술가로서 작품 활동을 해왔습니다. 취미로 시작한 백드롭 페인팅이 이제는 제 내면을 표현하는 또 하나의 언어가 되었습니다. 70대에는 ‘이온숙’이라는 이름으로 작은 갤러리에서라도 개인전을 열어 제 색을 세상에 보여주고 싶습니다. 수강생들에게 “있는 그대로의 나를 표현하라”라고 말해온 제가, 제 작품으로 그것을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셋째, 70대에도 강의하는 강사가 되고 싶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배움을 멈추지 않고, 여전히 강의실에 서서 누군가의 색을 찾아주고 인생의 길잡이가 되어주는 강사로 남고 싶습니다. 도전에는 나이 제한이 없다는 것, 제 삶으로 계속 증명하고 싶습니다.

Q. 나이를 두려워하는 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용기의 말은?
- “나이는 숫자가 아니라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50대에 대학원에 진학했고, 60대 중반에 왕중왕전 무대에 섰습니다. 만약 그때 ‘나이가 많아서’라고 포기했다면, 지금의 이 모든 것은 없었을 것입니다.
나이를 두려워하는 진짜 이유는 ‘늦었다’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하지만 묻고 싶습니다. “무엇에 늦었나요?” 인생에 정해진 시간표는 없습니다. 남들이 20대에 했다고 해서 당신이 50대, 60대에 하면 안 된다는 법은 없습니다.
오히려 나이는 깊이와 진정성의 증거입니다. 살아온 시간, 겪어온 아픔, 극복해온 위기들이 모두 당신만의 자산입니다. 젊음에는 없는 공감의 힘, 인내의 힘, 회복탄력성이 당신에게 있습니다.
스티브 마라볼리의 말처럼 “인생은 더 쉬워지지 않지만, 우리는 더 탄력적으로 됩니다.” 당신이 살아온 시간이 바로 그 탄력성의 증거입니다.
시작하세요.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젊을 때입니다. 1년 후, 5년 후의 당신은 오늘 시작한 것을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그 증거입니다. 당신도 할 수 있습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이나,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앞으로의 계획은 더 많이 나누고, 더 깊이 연결되는 것입니다.
첫 번째, 박사 학위를 마무리하고, 그동안 쌓아온 이론과 10년의 현장 경험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미술치료 서적을 출간하고 싶습니다. 경력단절 여성들의 회복탄력성, 그리고 누구나 쉽게 적용할 수 있는 미술치료 기법을 담은 책으로, 제가 직접 닿지 못하는 곳까지 메시지를 전하고 싶습니다.
두 번째, 개인적으로는 취미로 해온 백드롭 페인팅 개인전을 열어, 강사이자 치료사뿐 아니라 한 명의 예술가로서 제 색을 세상에 보여주고 싶습니다.
세 번째, 무엇보다 70대에도 강의실에 서는 강사가 되고 싶습니다. 배움을 멈추지 않고, 도전을 이어가며, “나이는 제약이 아니라 자산이다”라는 것을 제 삶으로 증명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당신도 할 수 있습니다.” 제가 그 증거입니다.
Q. 미꿈시 연말 결승 왕중왕전을 주최하고 주간한 한국강사교육진흥원과 구독자에게 한마디 남겨주세요.
- 한국강사교육진흥원께 먼저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미래를 꿈꾸는 시간, 미꿈시’이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뭉클합니다. 단순한 경연이 아니라, 강사 한 명 한 명의 이야기와 꿈을 존중하고 응원해주는 이 무대가 있었기에, 60대 중반의 제가 당당히 설 수 있었습니다.
특히 김순복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나이와 경력에 상관없이 오직 ‘진정성’과 ‘메시지’로 평가해주셨기에, 이 상이 더욱 의미 있습니다. 이 무대는 저뿐 아니라 나이와 환경의 한계 속에서 꿈을 포기하려던 모든 강사에게 희망이 되었습니다.
회원 여러분께도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의 관심과 응원이 저를 여기까지 오게 했습니다. 제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작은 용기가 되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상은 충분히 값진 것입니다.
부탁드립니다. 여러분도 꿈을 포기하지 마세요. 나이가 많아도, 시작이 늦어도, 환경이 어려워도 괜찮습니다. ‘미꿈시’처럼 미래를 꿈꾸는 시간은 언제든 시작할 수 있습니다.
저는 계속 꿈을 꾸며 도전하겠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더 많은 이들의 삶에 색을 입히며 걸어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