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무능'이 아니라 '순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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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프라임저널 김순복 칼럼니스트] 그는 통장을 세 번 확인했습니다. 32년을 일하고 받은 퇴직금이 찍힌 날, 액수가 틀렸을까 봐서가 아니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숫자였기 때문입니다. 24개월 뒤, 그는 다시 통장을 세 번 확인했습니다. 이번에는 액수가 틀렸기를 바라면서 말입니다.
특별히 어리석은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난해 폐업을 신고한 사업자는 100만 8,282명. 1995년 통계 집계 이후 처음으로 100만 명을 넘었습니다. 그 안에 통장을 세 번 확인했던 사람들이 아주 많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가 가장 오래 다닌 직장을 떠나는 나이는 평균 52.9세입니다. 그런데 일하고 싶은 나이는 73.4세입니다.(통계청, 2025년 고령층 부가조사) 이 20년의 공백을 목돈 하나로 메우려 할 때 사고가 시작됩니다. 지난해 퇴직연금 수급을 시작한 사람의 83.5%가 일시금을 선택했습니다. 매달 나오는 연금으로는 사업을 벌일 수 없지만, 한 번에 들어온 돈으로는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함정의 정확한 이름입니다.
퇴직금을 잃은 분들의 이야기에는 놀랍도록 비슷한 시간표가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퇴직금 도박'의 24개월이라 부릅니다. 처음 석 달은 축하의 계절입니다. 자녀 결혼, 차량 교체, 부모님 목돈. 하나하나 명분이 있어 거절할 수 없습니다. 다음 여섯 달은 조급함의 계절입니다. 통장의 숫자는 그대로인데 마음이 매일 줄어듭니다. 그다음 여섯 달이 결심의 계절, 마지막 아홉 달이 손실을 인정하지 못해 돈을 더 넣는 버티기의 계절입니다. 가장 위험한 구간은 결심의 계절이 아니라 조급함의 계절입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그 여섯 달 동안 판단력이 소리 없이 무너집니다.
다음은 제가 강의 현장에서 만난 분들의 이야기를 유형별로 재구성했습니다.
김 부장은 후배가 가져온 사업계획서를 꼼꼼히 보지 않았습니다. 검토하면 후배를 의심하는 게 되니까요. 관계가 판단을 밀어냈습니다. 중장년의 돈은 모르는 사기꾼이 아니라 아는 사람을 통해 나갑니다.
이 과장은 30년 영업 경력을 믿고 식당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잘했던 것은 '회사 이름으로 사람을 만나는 일'이었습니다. 간판을 뗀 자기 실력을 계산에 넣지 않았습니다. 내 경력의 몇 퍼센트가 회사 것이었는지, 그 계산이 먼저입니다.
박 차장은 달랐습니다. 퇴직금을 1년간 건드리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계좌를 분리했습니다. 그 1년간 월 180만 원짜리 일을 하며 시장을 지켜봤습니다. 창업은 2년 차에, 처음 계획의 3분의 1 규모로 했습니다. 그는 더 똑똑하지 않았습니다. 순서를 바꿨을 뿐입니다.
회사에서는 500만 원을 쓰려해도 세 단계 결재를 거치던 사람이, 인생에서 가장 큰 금액은 배우자와 삼십 분 상의하고 결정합니다. 32년간 결재라인 안에서 일한 사람이, 왜 자기 인생에는 결재라인을 만들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세 가지를 권합니다. 첫해에는 잠급니다. '노후 원금'이라 이름 붙인 계좌는 쉽게 열리지 않습니다. 큰돈에는 결재라인을 만듭니다. 이해관계 없는 제 3자 한 사람의 검토를 반드시 거칩니다. 하고 싶은 일은 10분의 1로 먼저 해봅니다. 3천만 원으로 실패하면 수업료지만, 3억으로 실패하면 인생입니다.
그가 잃은 것은 3억이 아니었습니다. 24개월 동안 자기를 믿었던 마음이었습니다. 돈은 다시 모을 수 있지만, 예순의 자신감은 다시 벌기 어렵습니다.
다시 묻겠습니다. 당신은 예외입니까? 예외인 사람은 따로 있지 않았습니다. 순서를 지킨 사람이 있었을 뿐입니다. 오늘 밤 배우자에게 물어보십시오.
"우리 퇴직금, 첫 1년은 안 건드리는 걸로 정할까?" 그 대화가 오가는 밤이, 인생 2막의 진짜 첫날입니다.
칼럼니스트 프로필

김순복 칼럼니스트는 20년간 강단에 선 베테랑 강사이자 '강사를 가르치는 강사'. 1,500여 명 강사 회원의 리더로 활동하며, 중장년의 인생 후반 설계를 주제로 강의와 집필을 이어오고 있다. 강의 분야는 공문서와 보고서 작성 실무, 강의 계획서와 제안서 작성법, AI 활용 업무 효율화, 보도자료 작성법, PPT 디자인, 강의 교안 기획, 성공하는 강의 운영 전략 등 강사 양성 전반과 중장년 인생 설계다. 저서로는 『벼랑 끝 활주로』, 『집중력 혁명』, 『강의 트렌드 2026』등 20여 권이 있다. [김순복의 올바른 공문서 작성법]과 한국프라임저널에서 [김순복의 중장년 인생 설계]와 [김순복의 에고그램 마인드 솔루션] 칼럼을 연재 중이다. 「김순복의 중장년 인생 설계」는 은퇴 이후의 돈·일·관계·건강을 현장의 사례로 풀어내는 연재 칼럼이다.
자료출처: 국세청 국세통계, 통계청 「2025년 5월 고령층 부가조사」, 금융감독원 퇴직연금 수급 현황